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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三國 - 넷플릭스 95부작 신삼국지 2010 리뷰

독후감 덕후감

by Paperback Writer 2025. 1. 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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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고, 유튜브에서도 공짜로 볼 수 있음.

 

삼국지 95부작 드라마. 신삼국(新三國)이라 불리는 작품. 중국의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진다.

이전에 CCTV가 만든 85부작도 훌륭하다고 하는데, 더 볼 필요를 못 느낄만큼 이 작품도 여러모로 뛰어나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삼국지인 소설 이문열 삼국지와 만화 고우영 삼국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길고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과 초현실적인 일기토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게 단점이지만 1.5배속 등으로 지루한 씬은 뛰어 넘을 수 있다.

 

나는 2024년 3월29일 시작해 9월1일까지 봄. 딱 5개월 걸렸다.

(넷플릭스에 삼국지 극장판 이라는 이름으로 신삼국을 축약한 작품도 올라와 있다. 삼국지의 대강 줄거리만 따라가려면 이걸 봐도 되지만, 추천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제1화의 시작 장면. 황건적의 난은 간단히 설명하고, 바로 조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드라마 전체에서 조조의 비중이 상당하다.

 

1. 뜻밖의 조조

물론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바탕이나, 실제 삼국 시대 고증이 어느 작품보다 풍부. 조조의 캐릭터만 봐도 알 수 있다.

 

딱 봐도 우리가 생각한 조조가 아님

 

키가 작고 귀여운 외모의 조조. 우리가 조조하면 떠올리는 고우영 삼국지의 캐릭터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고우영 삼국지의 조조

 

실제로 조조는 키가 작았다고 한다. 드라마에는 조조가 한시를 읊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이 역시 기존의 소설 삼국지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장면이다. 조조가 지은 한시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는데 표현이 솔직하고 유려해서 음미할만한 작품이 많다.

 

 

중국에 전해져 오는 조조의 모습

 

초반에 등장하는 조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작은 키에 볼품 없는 외모가 주는 첫인상은 '에게게'하는 실망이지만, 이내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에 매료된다. 수많은 군웅 중에 유일하게 유비의 가치를 알아보고, 시대의 흐름을 일이관지하게 꿰뚫고, 사태의 추이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제시한다.

 

유비를 거두는 이유를 설명하는 조조. 배우의 연기력이 쩐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조를 높이 평가한 이문열 삼국지나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만화 '창천항로' 같은 작품을 연상할 수 있다.

초매력남 조조르 주인공으로 한 일본 만화 창천항로. 원작자가 이학인이라는 한국인으로 표시돼 있다.

 

물론 조조 영웅화는 아니다. 뒤로 갈수록 조조의 지략과 함께 그가 어떻게 권력에 도취해 간웅이 되어 가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유부녀를 좋아했다는 야사(정사?) 또한 빼놓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이 배우의 열연과 치밀한 각본 때문에 무척 설득력 있게 보인다. '저 난세를 평정하려면 저 정도의 간계는 어쩔 수 없는게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 역사와 소설을 종합한 재해석

중국 CCTV가 이중톈 교수의 삼국지 강의( 百家講壇 시리즈. 유튜브에서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를 방영해 삼국지 바람을 일으킨게 2006년이었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이중톈 삼국지 강의를 읽어보면, 4년의 시차를 두고 제작 방영된 이 드라마는 이중톈의 강의를 상당히 반영해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벽동책 2권. 중고로 사면 싸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나광중의 삼국지연의를 시종일관 비판한다. 여러 사료를 검토해 이것이 맞고 이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제시하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의 강의도 초반은 조조 이야기로 일관한다. 또 황건적이나 도원결의 같은 사건은 가볍게 취급한다. 드라마에도 이런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황건적 이야기는 초반의 설명으로 간단히 넘어가고 (이 글의 첫 영상 참고), 도원결의도 한 장면으로 가볍게 보여준다. 물론 아름답기는 하다.

 

제갈량은 95부 중 3분의1이 넘는 34부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제갈량의 이미지는 부채를 든 미소년 도사라는 이미지가 잘 살아 있는데, 이중톈에 의하면 삼고초려를 비롯해 삼국지연의의 많은 부분은 과장됐다고 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제갈량의 역할을 비중 있게 보여준다. 단 적벽대전으로 가면 연의와 정사 중 정사에 더 무게를 두면서 드라마적인 긴장과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을 탄다.

 

드라마는 최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은 빌드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 시작은 37화에서 제갈량이 동오와 손잡기 위해 홀로 오나라로 찾아가는 것이다. 오나라 역시 이미 제갈량과 같은 천하삼분지계를 구상하고 있다. 또 적벽대전까지 가는 과정에서 제갈량 못지 않게 오나라 장수와 군사의 활약을 강조한다. 이 역시 이중톈의 강연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나라의 대장군 주유가 약체인 촉과 손잡기 위해 제갈량에게 화살 10만개를 구해오라고 하는 이야기는 삼국지에서도 유명한 일화인데, 이중톈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드라마는 이 장면은 소설을 따랐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더라도 명색이 삼국지인데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40화에 등장한다. 적벽대전은 42화에 등장한다. 여기까지 가기 위해 빌드업 과정이 무려 5회 분량에 이른다.

 

짚풀 더미 배 위에 날아와 박히는 화살들. 멋지게 시각화했다.

 

빌드업 과정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인 동풍 기원제. 41회에 등장한다. 소설이나 만화에 비해 비중이 작고 조금 더 현대적이다. 주술적인 면을 살리기보다는 이미 동남풍이 올 것을 알고 제갈량이 사기를 쳤다는 정통(?)적인 해석을 반영했다. 그런데도 극적인 재미가 덜하지 않다.

 

 

막상 적벽대전 장면은 약간 싱겁게 넘어가는 면이 있다. 특히 제갈량의 역할을 소설보다 축소하고 오나라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정사나 이중톈의 입장에 더 가깝다. 적벽대전 전투 장면은 42화의 5분5초부터 16분 39초까지이니 약 12분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는 고대 중국의 전투력 수준!

 

사실 신삼국은 비현실적인 전투장면이 너무 길게 나와 지루한데, 이상하게 적벽대전은 깔끔하게 처리했다. 조자룡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슈퍼 히어로처럼 나타나 한 사단을 혼자 섬멸하는데 그 과정을 마블영화처럼 다 보여준다.  이런 부분은 2배속이나 뛰어넘기로 넘어갔다. 가끔 진을 치는 방법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 흥미롭긴한데 그 내용도 사실은 비현실적이다.

 

 

백마를 탄 영웅, 조자룡!

 

 

전체적으로 드라마는 위 촉 오, 조조 유비 손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매우 균형 잡힌 해석을 보여준다.

 

기존의 삼국지가 촉한 정통론에 입각해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에게 대의를 부여하고 나머지 나라들을 역적이나 별볼일 없는 나라로 취급한다면, 이 작품은 위 나라의 조조와 오 나라 손권도 유비 못지 않은 훌륭한 군주로 표현한다.

 

(아 마지막 부분에서 제갈공명과 사마의 대결에 집중하면서 오나라는 완전 실종돼 버리네요. 손권이 천자에 스스로 올라가는 장면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마의도 정권찬탈로 중국 정사에서나 소설에서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 개성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치밀한 인물로 만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94화에 제갈공명이 죽고, 95화 한 편은 온전히 사마의 이야기로 꽉 채운 점도 인상적이다.

 

3. 인물의 생생함

드라마로 보니 가장 좋은 점은 2가지였다.

 

첫째는 그 많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 욀 필요 없이 얼굴만 봐도 캐릭터가 기억되니 소설을 볼 때보다 훨씬 편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위연이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하면서 다시 찾아보게 되지만, 드라마는 얼굴만 딱 봐도 '아 제갈량 무시하던 촉 할아버지 장군'하고 알 수 있다.

 

두번째는 디테일이다. 95부작에도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소설이나 만화에선 한두줄로 퉁친 것을 1회 2회씩 끌고 가며 역사적 사실과 여러 면을 종합해 묘사한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기 전 마지막 전투에서 사마의에 승리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되는 장면이 상당한 공을 들여 2회에 걸쳐 표현 돼 있다. 제갈량과 사마의를 숙명의 라이벌이자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지기'라고 표현한 점도 아주 맘에 든다.

 

사마의의 손자가 나중에 삼국을 통일하니 결국 제갈량의 캐릭터를 그만큼 띄워준 셈.

 

물론 반대로 소설에서 중요하게 등장한 얘기를 대하 하나로 퉁친 칠종칠금 같은 사례도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2PcB7WbhUw

 

드라마 주제가도 멋지다.

 

시작 음악은 영웅의 서사시, 끝 음악은 인간사의 허무함을 담아냈다.


주인공들이 나이에 따라 점점 늙어가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

90화에 이르면 미소년 제갈량도 이렇게 병약한 늙은이가 된다.

 

4. 강한 여운으로 찾아본 다른 작품들

드라마를 보고 나면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삼국지를 검색어로 여기저기 찾아보니  티빙에 '삼국의 세계'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2018년 중국에서 만든 6부작 다큐멘터리인데, 그럭저럭 볼만하다.

1부 영원불변의 고전 삼국지

2부 명재상 제갈량의 진실

3부 조조, 간웅과 영웅 사이

4부 신이 된 사나이, 관우

5부 적벽대전의 영웅들

6부 삼국지 정사와 연의

 

이런 순서다. 여기서도 역시 조조를 한 주제로 다루는데, 대충 하나마나한 소리다.

 

 

참고로 넷플릭스에 있는 극장판 삼국지들은 드라마 삼국지를 6편인가로 축약한 버전이다.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급급하니 볼 필요는 없다. 차라리 극장용으로 만든 적벽대전 같은 진짜 삼국지 영화들이 더 볼만하다.

 

유튜브에는 고우영 삼국지 애니메이션판도 올라와 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데, 참으로 경이롭지만 지금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를 원작으로 삼은 만화 삼국지-국내에는 소년 삼국지, 전략 삼국지 등으로 번역-를 다시 1991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듦었다.)가 있기 훨씬 전에 한국에서 고우영 본으로 어린이용 삼국지 애니메이션을 극장용으로 먼저 만들었다는 점은 대단하다. 2편인가 3편까지 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MWYL0IwfqSU

 

 

5. 고우영, 이문열, 그리고 중드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이문열의 평역 소설 삼국지를 읽은 입장에서 중드 삼국지를 보면서 결국 삼국지의 최고 판본은 중국에서 나오는가 싶다.

 

20대에 읽은 소설 삼국지는 패권을 향한 군주들의 경쟁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문열의 시각은 술술 읽혔고, 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은 이후 접한 다른 작품들과도 일맥상통했다.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는 속도감이 압권이다. 2배속으로 돌린 듯 빠른 전개 속에서도 캐릭터는 생생하다. 거창한 대의명분보다 실리와 능력, 그리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시니컬한 관점은 매력적이었다.

 

드라마 신삼국은 소설과 만화를 아우르는 종합편이었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파악이 더 생생했고, 무엇보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들었다. 주군과 군사는 예의를 갖추되, 할 말은 바로 해야 한다. 권력자는 자신이 결국 인간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진하게 남았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

대부분의 삼국지는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이겼다는 고사로 마무리되곤 한다.


심삼국은 사마의를 마지막 주인공으로 세운다.


그가 권력을 차지하는 과정을 다스베이더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그리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마무리한다.

 

단순히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권력과 인간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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