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무대다. 우리는 각자 연기를 한다. 스크립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볼 수 있는 이들은 보고 있다. 그들의 대사는 고도로 훈련된 언어, 몸짓, 사고 방식으로 쓰였다는 걸. 아비투스는 이 무대의 숨겨진 각본을 드러낸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연기법을 배우든, 각본을 찢든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고.
몇 해 전 이 책을 봤을 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냄새가 났다. 성공의 냄새, 야망의 냄새. 거부감이 일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때도 외면했다.
지금은 다르다. 세상을 관통하는 렌즈로 보였다. 냉소와 통찰이 뒤섞인 언어로 무장한 이 책은 단순한 처세술을 넘어섰다. 이건 해부도다. 우리의 사회, 계층, 행동 양식의 미세한 갈라진 틈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저자 도리스 메르틴은 사회의 뼈대를 본 사람이다. 그는 행동 뒤에 숨은 사고를 읽어냈다.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환경과 경험에 길들여졌는지 보여준다. 그는 계층의 비밀을 풀어냈지만, 그 지식으로 우월감을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이 무대 위에서 당신은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가?" 그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그러나 차갑지 않았다.
'아비투스'는 더 이상 학술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사회적 유전자를 설명하는 코드가 되었다.
계층은 문화로 작동한다. 언어, 옷차림, 취향, 대화 방식. 아비투스는 그 차이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개념은 불평등을 분석하는 도구가 되었고, 동시에 야망을 자극하는 전략서로도 읽혔다. 특히 기업 세계에서 아비투스는 인간의 무의식을 설계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사용됐다. 누군가에게는 진보의 열쇠, 누군가에게는 냉소의 대상이었다.
이 책은 위험하다. 계층 상승의 교본으로 읽는다면 독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더 깊은 메시지가 있다.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라는 주문. 표면의 화려함 뒤에는 "누구인가"를 묻는 조용한 목소리가 있었다.
이 책은 뜻밖에도 이 세계의 지위높은 이들에겐 자기홍보보다는 자기확신, 경쟁보다는 협력, 실용적 지식 위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서삼경과 다르지 않다. 수신서다.
계층 상승을 목표로 제시한다는 점이 주객전도이긴 하지만,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조급함보다 자기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진지함이 더 증요하다고 일러주는 내용은 인상적. 그 얘길 고상하게 늘어놓지 않고 자기계발서로 노골적(=직설적)으로 정리한 점이 오히려 더 맘에 든다.
이 책은 하나의 맵이다. 방향은 독자가 정한다. 계층 상승이 목적이라면 그 길을 알려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과정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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