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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남로당 - 역사는 냉엄하다

독후감 덕후감

by Paperback Writer 2025. 1. 2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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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전3권

남조선 노동당. 이른바 남로당의 실존인물이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료를 더해 소설화했다. 이병주 작.

이 책을 읽는 동안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흉상 소동이 벌어져 현실과 소설이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어 좀 힘들었다.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노선투쟁과 기회주의와 좌우갈등과 그 모든 인간군상의 헛된 정치놀음이 70년 뒤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광경이라니.  참 이상한 독서였다.

책을 읽으며 몇번 놀랐다.

소설이니 남로당 역사 안에 가상의 주인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주인공 박갑동을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이었다. 단 한사람, 여자 주인공 격인 인물이 김옥숙으로 나오는데, 그 여자가 어떤 인물인지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전옥숙. 영화감독 홍상수(김민희의 애기 아빠)의 어머니다. 

나무위키 전옥숙 항목의 사진

  
어쨌든 소설 이야기로.


이 책을 구할 때는 당연히 소설 남부군이나 태백산맥처럼, 해방 후 공간의 좌익 정당이었던 남로당에 호의적인 소설일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병주 작가는 박정희에 비판적인 언론인이었기에 다소 리버럴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대놓고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박갑동

이 소설은 주로 박갑동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 같은데, 박갑동씨 자신이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나중에 북한을 탈출한 인물이다. 6.25전쟁 당시 월북했으나 숙청될 위기까지 갔다. 탈북 이후 일본에서 살면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고 반북 운동을 했다.

 

읽으면서도 이 소설의 묘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 소설이 1980년대에 나왔는데, 박정희 정부 당시 박갑동을 초청해 박헌영과 남로당에 대한 증언을 요청하고 공개할 때 어느 정도 왜곡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언젠가부터 해방전후 역사를 볼 때 힘들어진다.

생각이 많아진다고나 할까. 

우리가 역사를 자료나 논문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 읽으려 할 때에는, 사료가 다 전할 수 없을 그 시대의 공기나 인물에 대한 판단, 작가의 문제의식을 배우려고 읽는다.

그런데 해방전후의 기록물은 저마다 관점이나 사실관계조차 너무 다르다. 

 

박헌영

남로당의 주역인 박헌영만해도 그렇다. 

이 작품에선 전술적 실패와 소련을 추종하는 모험주의로 몰락하는 무능한 혁명가로 묘사했다. 

실제 박갑동의 증언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병주의 판단인 듯 하다. 

(작가 이병주 역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어떤 역사책에서는 박헌영이야말로 조선공산당의 창시자요 전설적인 항일투쟁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남북한 사이에서 여운형과 함께 고군분투하다 숙청된 민족사 비극의 희생양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어느 게 맞는 판단인지 알 수 없다.

삼국지연의를 읽고 유비가 착한 편이고 조조가 나쁜 편이라고 하는 식 밖에 안되는 느낌.

지금 당장 홍범도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그는 독립전쟁을 벌인 장군인가, 독립군을 파멸시킨 빨갱이인가. 

자유시 참변의 진상조차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보다 더 가까이 1948년에 벌어진 여수순천 사건은 어떤가. 

 

1987년에 나온 이 소설에서는 남로당의 국군 지하조직이 남한의 총선을 방해하라는 중앙당의 지침에 준해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는 여수순천 사건 특별법이 시행돼고 '4.3 진압에 반대한 봉기'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도 많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악인지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지고 같은 사람도 시기에 따라 다르게 말한다.

역사라는 건 그렇게 후손들이 자기 입맛에 따라 재단하고 여기저기로 가져다 붙여 써먹는 소잿거리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란 아무런 교훈을 얻을 게 없고 편가르기의 소재로나 동원되는, 고사성어 일화만도 못한 것인가.

역사에 문외한이나 그냥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보건데는 지금 어디에도 역사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동원해 지금을 정당화하고 치장하려는 놀음만 보인다. 

좌든 우든 마찬가지다.

이병주는 남로당의 10년에 걸친 흥망성쇠가 참으로 허망하다고 했다. 

열정과 정의감에 불타던 훌륭한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혁명의 불쏘시개는 커녕 분단과 외세 추종의 제물로 바쳐버리고 박헌영을 비롯한 저들 자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탄한다.

 

20세기 중반, 식민지에서 해방된 조국에서 사회주의의 열망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젊은이들.

누가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역사의 평가란 냉정하다.


지금 2025년의 역사는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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