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6학년 때 사줬더니 하룻만에 다 읽고는 '엄마도 읽어봐' 하며 툭 던졌던 책.
그런 얘길 해본적 없는 아이라서 그런지 아내도 책을 폈는데 하룻만에 읽더니 '당신도 읽어봐요'라며 건넸다.
나도 하룻만에 읽었다.
이런걸 근미래SF라고 하나?
책의 골자는 책광고에 나온대로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설정이다.
페인트라는 제목은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를 일컫는 말이다.
국가에서 센터를 설립해 아이를 키워주는 근미래의 사회.
아이들은 모두 국가에서 기르고,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1월에 센터에 들어와 '제누'라는 이름을 얻은 '제누 301'.
스무 살을 앞두고 계속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 즉 '페인트'를 치르고 있다.
아이를 입양하면 얻을 수 있는 혜택 때문에 부모 후보자는 적극적이지만, 제누는 선택이 어렵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대놓고 생각하게하는 도발적인 구도라서 그런지, 작가의 글쏨씨가 좋아서 그런지 술술 잘 읽힌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존재다.
엄마와 아빠가 맘에 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살아야 한다.
소설은 그 구도를 뒤집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같이 살자고 요청하고, 아이가 선택을 한다.
그런 설정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당긴 것 같다.
뒤집어진 설정은 질문하게 한다. 좋은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이야기와 함께 질문은 더 나아간다.
자식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부모에게 자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후반부에서 줄줄줄 교훈이 쏟아져나오긴 하지만 반전과 함께 어우러져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직접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까 한 가족이 같이 독후감을 나눠볼만하다.
스포일러는 아니고, 책의 설정 중에 재미있는 것이 '헬퍼'라는 가사도우미 로봇의 존재였다.
집안의 온갖 잡심부름을 다 해주는 헬퍼를 집집마다 구비해둔다는 설정인데, 자식에게는 밥상 차려주고 청소해주고 옷 챙겨주는 부모 역할을 하는 셈이고, 부모에게는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규범있고 말 잘 듣는 아이들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서로의 필요를 요구하는 관계라면 그건 가사도우미 로봇과 다를바가 뭐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더 나아가 자녀세대의 역할이 착실하게 커서 꿈을 이뤄주고 열심히 일해서 부모세대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부모세대의 역할이 자녀가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뒷바라지해주고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라면, 그건 굳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책도 재미있지만 책에 나온 NC라고 하는 제도와 사회상을 곰곰이 씹어보면 재밌는 질문이 자꾸 나온다.
책 속의 한마디!
"그럼, 우린 진짜 친구가 되는 거야. 부모보다 훨씬 가까운!" "부모들에게서 좋은 면만 찾지 마. 너도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그러지 않으면 그게 너와 그분들 모두를 힘들게 할 테니까."
"우리가 꼭 부모가 되어야 할까? 그냥 친구가 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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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완득이, 아몬드, 페인트 3편은 어른도 재미있게 읽어볼만한 좋은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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