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의 시기, 파시즘은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로버트 O 팩스턴 교수의 '파시즘'(손명희 최희영 번역, 교양인 2005)은 그 그림자를 드리운 실체를 응시한 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때였으니 2017년 쯤이었다.
광화문교보문고에 갔다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박근혜를 지지하는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이 문재인 시대에 꼭 읽어야할 책이라고 박사모들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2005년에 나온 책을 역주행시키다니 대단하다.
책 자체는 좋다는걸 알고 있었고, 또 문재인정부(와 지지자)가 정말 파시즘적인 흐름을 보인다면 어떡하나, 아니 박근혜야말로 파시즘적이지 않았나. 최소한 박정희 정부는?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자고 맘 먹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교양인 출판사에서 한권을 보내줬었는데 후배기자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서점에서 한권 샀다.
본문만 490쪽, 주석과 인덱스가 100쪽이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다.
로버트 팩스턴은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만이 오로지 파시즘의 전형이라는 입장이다.
책은 나치와 파시스트당이 탄생부터 집권, 전쟁과 학살을 거쳐 소멸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며 이들이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군사독재 정권이나 권위주의 정권과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다.
그러면서 파시즘이란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가능한 독재의 한 형태이지만, 일반적인 독재정권을 파시즘이라고 불러선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
20세기 중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에서 파시즘 세력이 등장해 집권하고 파멸되는 과정을 정리하면서 파시즘이란 무엇인지 귀납적으로 정의한다.
조효제 교수가 서문에도 썼지만, 파시즘은 이제 우파 권위주의 정부를 비난하는 수사처럼 쓰인다. 마치 좌파정부를 포퓰리즘 정부라고 낙인 찍으려는 시도처럼.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 목동의 외침이 가짜 외침 때문에 외면 당했듯이, 파시즘이라는 말이 남용될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파시즘의 등장에 무뎌지게 만들 수 있다. 무엇이 파시즘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다.
팩스턴 교수는 1932년생이다.
유럽의 현대 정치사를 연구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
이 책의 원제는 The Anatomy of Fascism. 일생 연구해온 유럽의 파시즘 정치를 총정리하려는 시도다. 본문은 약 500쪽.
무솔리니와 히틀러, 프랑코 정부의 역사적 사례를 이야기처럼 풀어가면서 파시즘의 탄생과 발전, 파괴를 정리하기에 정치나 정치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주석을 읽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파시즘은 군부 독재나 권위주의와 다르다.
대중을 직접 동원하여 팽창주의적 정치를 펼친다.
지도자는 신적 아우라를 띠며 등장한다.
대중의 열광이 권력의 원동력이 된다.
그 열광을 끌어내기 위해 민족주의, 반사회주의, 인종주의가 동원된다.
20세기 대중민주주의 발전의 그림자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팩스턴 교수가 정리한 파시즘의 세 단계 발전과정이었다.
1단계인 형성 단계에서는 대중이 지도자에게 열광하면서 힘을 부여한다.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도자는 신적 아우라를 지닌 인물로 연출된다. 대중의 열광이 이런 파시스트 지도자에게 힘을 부여하게 된 것은 20세기의 대중민주주의 덕분이다. 이 때 파시스트들은 주로 생디칼리즘에 가까운 사회 개조를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정책과 색깔까지 보인다. 나치당의 정식 명칭이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기득권에 대한 깊은 반감이 동력이다.
2단계 권력 장악 단계에서는 정치 귀족과 경제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파시스트 지도자와 타협하며 길을 터준다. 1단계에서 파시스트 정당은 극렬한 비난을 받지만, 대중의 지지가 꺾이지 않으면 결국 맞서기보다 그 지도자를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단계로 들어간다. 1단계에서 사회주의 못지 않은 공동체주의와 공동체 경제를 역설하던 파시스트 정당은 여기서 이념적으로 변화를 보인다. 열광과 퍼포먼스는 남아 있지만 경제정책은 우왕좌왕하고 정치제도는 1당독재로 치닫는다. 1단계에 동참했던 열정적 파시스트들이 떠나거나 숙청당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대중을 위한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속은 대중의 열광을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권력의 영속을 위해 동원하는 체제로 개변하는 것에 가깝다.
3단계는 전쟁과 학살이다. 1,2단계를 거치며 집권한 파시스트 정권은 열정과 퍼포먼스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극장국가의 성격을 띄게된다. 마치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가야만 넘어지지 않듯이 파시스트 정권은 대중의 흥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만 정치경제 부르주아를 압도하는 힘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선택한 것이 학살과 전쟁이다.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
군부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은 대중을 수동적인 피통치자로 만든다.
파시즘은 대중의 참여와 열광에 기반한다.
이 점에서 구분된다.
군부독재나 일반적인 권위주의 정권은 대중을 수동적인 피통치자로 머무르게 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1당독재가 아니라 관료와 종교, 문화 등의 영역이 사적 영역과 함께 자율적으로 통치에 협조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우파 정권은 3단계 파시즘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팩스턴 교수는 파시즘을 공동체의 쇠퇴,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단결, 에너지, 순수성의 보상적 숭배로 특징지어지는 정치행위로 정의한다.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파시즘의 싹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싹이 햇빛과 물을 받아 양지로 뻗어나오느냐다.
즉 1단계를 넘어 권력 장악 단계와 급진화 단계로 전진하는가이다.
이 점에서 팩스턴 교수는 경제 사회 정치적 권력을 쥔 사람들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초기 파시즘이 권력 장악을 향해 더 나아갈 것인지는 위기의 심각성 정도와도 부분적으로 상관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 특히 경제 사회 정치적 권력을 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파시즘이 세력을 불려나갈 때 적절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파시즘의 주기가 무턱대고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파시즘이 성공을 거두었던 과정을 이해한다면 제때 현명하게 대처할 가능성도 훨씬 커질 것이다." (490쪽)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에서는 조효제 교수의 추천사를 읽을 수 있다. 그 내용만 읽어도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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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3단계는 20세기 초 유럽의 사례를 일반화한 것이다.
파시즘이란 원래 이념적 일관성이란 없는 잡탕의 사고방식에 더 가깝기 때문에, 배타적 우월주의와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소외감을 자극하는 지도자와 만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발아될 수 있다.
2024년 12월3일의 비상계엄 사태는 어떨까. 엄청난 헤프닝과 코미디 같은 언사를 남기고 불과 몇시간만에 끝나는 것 같던 이 사건은 열광적인 대중, 부정선거론-중국개입론-종교적 구원론과 결합하며 뜻밖의 열정을 유지하고 있다. 우파적 대중 행동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 사태는 어쩌면 1단계의 초기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을 추천했던 인물이 우파 논객인 정규재라는 사실이다.
500쪽에 이르는 사회과학 벽돌책인 이 책이 한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정규재씨는 박근혜 탄핵에 이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대중의 열광을 동원해 한국사회를 바꾸려 한다며 이 책을 읽어보라고 지지자들에게 권했다. 그러고보니 6공화국 정권 중에 정권의 행적을 성공적인 치적으로 포장하는데 가장 능숙했던 정부가 문재인 정권이긴 했다.
SNS시대가 되면서 정치담론도 예전보다 훨씬 널리 빠르게 전파된다.
나꼼수 현상이 그렇고, 문재인정부 집권뒤 급속히 떠오른 '한경오 혐오' 현상 역시 그렇다.
박사모의 활동도 아마 카카오톡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한다면, 이번에는 독재자가 대중을 호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중이 파워풀한 지도자를 요구하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때는, 그렇더라도 2단계, 즉 실제로 그런 형태의 파시즘세력이 집권을 하는 단계로까지는 나아가기 힘들다고 봤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시대에는 소련의 등장이라는 사회주의 공포가 있었기에 경제-정치 기득권 세력들이 대중을 달래주기 위한 타협책을 찾아 파시스트들과 손을 잡았지만 2017년만해도 그런 동력이 없었다.
또 아무리 SNS시대라고 해도 엘리트들은 대중의 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댓글부대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우정치를 적절히 이용하는 방안을 찾는데 더 능숙해졌다.
결론적으로 문재인정부는 파시즘 1단계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파시즘과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촛불혁명을 강조하면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중의 힘을 강하게 의식하지만 1당독재나 자신들의 정권 팽창을 위해 국가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탈권위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다만 맹렬한 추종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 큰 카리스마를 기대했고, 정권 역시 여기에 부응해 이른바 과거 청산 작업을 강하게 드라이브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 주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이 후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국론 분열, 정권 재창출 실패와 검찰 총장의 대통령 직행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어떤 면에서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이야말로 히틀러처럼 게으르면서 퍼포먼스를 중시했던 면에서 파시스트적이었다.
허나 그는 경제권력을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했지 자신(과 자신의 정당)의 통치를 확대하기 위해 동원하려는 생각은 못했다.
파시즘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기엔 그의 언변도 모자랐다.
결정적으로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북한이라는 존재는 조롱거리였지 대적이 되는 지도자를 추종케 만들 정도로 실질적인 위협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며, 세월호 참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박의 허술한 통치는 그에게 반대하는 대중이 더 열정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비상계엄 전까지만해도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우파 정부의 모습에 머물렀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비상계엄 시도가 이념적인 대결 구도를 증폭시키면서 보수 대중을 광장에 나온 극우로 만들었다.
이 여파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두렵다.
"한창 세력을 떨치던 때의 파시즘은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어, 그 이전까지는 접근할 수 없었던 사적인 영역을 크게 줄였다. 파시즘은 시민권의 행사를 헌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누리는 것에서 지지와 순응을 위한 대규모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서 공동체의 이익 밖에서는 개인이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게 했다. 또 완벽한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과 국가의 권력을 강화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파시즘은 그때까지 유럽에서 전쟁이나 사회 혁명 중에만 나타났던 공격적 감정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 자본가들과 권력을 잡은 파시스트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모, 동조, 적대의 복잡한 관계를 상세히 살펴본다면 파시즘을 단순히 보수주의의 근육질적 형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43쪽)
"카리스마의 기본은 자기가 인민의 의지의 체현이자 인민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라는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지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기존의 독재자들에게서도 카리스마를 찾아볼 수는 있다. 또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 중에도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은 있었다. 장례식에 모인 군중의 광적인 흥분 상태로도 알 수 있듯, 스탈린 또한 분명히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역사적 운명을 짊어진 존재라는 역할을 공산당과 나누었다. 그 때문에 스탈린 사후 새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수많은 음모와 살인이 저질러졌지만 공산당의 존재는 권력의 계승을 가능케 했다. 그에 비해 파시즘의 지도력은 어떤 통치형태보다 카리스마에 의존하는데, 지금까지 파시즘 정권에서 권력이 승계된 예가 한번도 없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288쪽)
"파시즘 통치를 폴리오크라시(polyocracy),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여러 세력이 권력 중심을 이루어 항구적인 경쟁과 긴장관계 속에서 협력하는 통치 형태라고 보는 해석이 등장했다. 폴리오크라시에서는 저 유명한 영도자 원리가 정치사회적 피라미드를 단계별로 내려가며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홉스적 세계에서 작은 총통과 두체들을 수없이 양산한다."(289쪽)
"파시즘 정권들이 사적인 영여고가 공적인 영역의 경례를 너무나 급진적으로 바꾸어버린 나머지 사적 영역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나치정권의 로베르트 라이 노동부 장관은 나치 국가에서 유일한 사적 개인은 잠든 사람 뿐이라고 말했다."(326쪽)
"권력을 잡은 파시즘은 하나의 합성물과도 같다. 다시 말해, 파시즘은 보수주의자와 국가사회주의자, 극우파라는 각기 다르지만 못 어울릴 것도 없는 세 성분이 자유로운 제도와 법치를 희생해서라도 활력이 넘치는 순수한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는 공동의 열정과 거기에 걸맞은 공동의 적을 매개로 하여 한데 결합한 강력한 합성물이다. 그 혼합비율은 선택 동맹 타협 경쟁 등 온갖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결과이다. 운동하는 파시즘은 고정된 본질이라기보다는 여러 관계들의 그물에 가까워 보인다."(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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