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가슴에서 우러나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Let me speak from the heart for a moment.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Saint Paul said, be subject to one another out of reverence for Christ.(에베소 5:21)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하려면,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To work together, to grow together, we must be tolerant.
어떤 사람이나 사제단도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 해선 안됩니다. No one person or faction seeking to dominate another.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And speaking to the Ephesians, who were, of course, a mixture of Jews and Gentiles,
다양성은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선물임을 바오로는 상기시킵니다. Paul reminds us that God's gift to the church is its variety.
이 다양성, 사람과 견해의 다양함은 교회에 능력이 됩니다. It is this variety, this diversity of people and views which gives our church its strength.
성모의 교회를 수년간 섬겨오며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And over the course of many years in the service of our mother, the church, let me tell you,
다른 어떤 죄악보다 가장 두려운 죄악이 있습니다. there was one sin which I have come to fear above all others.
확신. Certainty.
확신은 일치의 가장 큰 적입니다.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확신은 인내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그리스도조차 끝내 확신하지 않으셨습니다. Even Christ was not certain at the end.
(라틴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Dio mio, Dio mio, perché mi hai abbandonato?
십자가 위에서 제9시에 그는 절망으로 울부짖었습니다. He cried out in his agony at the ninth hour on the cross.
우리의 신앙은 의심과 함께 걸을 때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Our faith is a living thing precisely because it walks hand in hand with doubt.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If there was only certainty and no doubt,
신비도 없고 믿음도 필요치 않습니다. there would be no mystery and therefore no need for faith.
기도합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기를. Let us pray that God will grant us a Pope who doubts
우리의 교황은 범죄하고 용서를 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분이기를. and let him grant us a Pope who sins and asks for forgiveness and who carries on.
하느님의 백성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은
의심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2010년 '하늘과 땅'
가장 위험한 우상은 우리가 하느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2004년 9월 11일 연설
자신의 취약점을 인정하고 깨닫는 사람만이 통합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8월 21일 강론
나는 무신론자보다 영지주의자를 더 많이 아는데,
무신론자는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영지주의자는 매우 어정쩡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2010년 '하늘과 땅'
인간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줄
영적 지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길이 바른 길이고 우리가 무사히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2012년 3월 23일 강론
창의적인 사람이 도전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모든 담화나 생각에 대해 일단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전문가가 단언한 것에도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안하는 것에도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매사에는 항상 다른 측변이 있게 마련이고,
다른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2003년 4월 9일 교육위원회에 보낸 메시지
다시 보십시오. 모두가 자기 나라 사람들 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든 것을요.
이탈리아인들은 저쪽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은 저기...
영어 쓰는 사람들은 또 저쪽에...언어에 따라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트리덴틴 미사가 아직 전 세계의 전례였을 때—
우리는 모두 라틴어로 말했지요.
하지만 당신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그 ‘죽은’ 언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죠.
당신들은 ‘보편적’ 교회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고작해야 연합체일 뿐입니다.
("교회는 진화하고 있어요."-추기경 로렌스)
붕괴하고 있소.
교회는 영적 지향의 흐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걷던 길에서 벗어나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문을 닫고 자기중심적으로만 흐른다면,
그 교회는 금세 노쇠해질 것입니다.
자기 지향적 태도로 말미암아 병든 교회에게
나는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변화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2012년 예수회 잡지
내가 교황직을 원하지 않는데도요? What if I don’t want it?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교황직을 원할 수 없죠. No sane man would want the papacy.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내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요. But what if I know in my heart I’m not worthy?
그래서 저자가 교황이 되게 놔두라고요? 저자를 막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And let it go to him? How am I to live with myself if I don’t try to stop him?
가장 위험한 우상은 우리가 하느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2004년 9월 11일 연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이슬람을 용인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서 우리를 경멸합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에서 그들을 보살피지만,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우리를 말살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말 그대로 우리 성벽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나약함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입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종교 전쟁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전통을 굳건히 지킬 지도자!
지난 5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계속된 표류를 멈추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이 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졌는지 깨닫게 할 지도자!
이 짐승들과 맞서 싸울 힘을 찾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나는 콩고, 바그다드, 그리고 카불에서 사목 활동을 했습니다.
나는 죽거나 다친 이들의 긴 줄을 본 적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었습니다.
당신이 "우리는 싸워야 한다"라고 말할 때—
우리가 무엇과 싸운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오늘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 망상에 빠진 자들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아닙니다, 형제여.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말입니다.
지금 증오에 굴복한다면,
"우리 편"과 "저 편"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형제 자매라 부르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이 처음이고, 아마 마지막이겠지요.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너무도 비겁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 로마, 선거, 권력만을 걱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전통이 아닙니다.
교회는 과거가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지금부터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 뿌리를 둔 종교적 다양성은
다른 문화와 종교 간의 대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를 존중해야 하며, 복음화를 위해서는
까다로운 도전이 되더라도 기꺼이 맞아들여야 합니다.
-2004년 9월 25일 강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상대를 처단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화해하려는 모든 시민들의 열정이 한데로 뭉쳐야 합니다.
-2007년 10월 11일 인터뷰
나는 언제나의 나 그대로였어요. I was who I had always been.
하느님의 섭리를 고치려는 것이, 내 몸을 그대로 두는 것보다 더 큰 죄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내 모습은 하느님이 만드셨으니까요.
It seemed to me more of a sin to correct His handiwork than to leavemy body as it was I am what God made me.
그리고 어쩌면 나의 다름이 나를 쓸모있게 해줄수 있죠. And perhaps it is my difference that will make me useful.
나는 다시 당신의 설교를 떠올립니다. I think again of your sermon.
나는 세상의 확신, 그 틈새에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I know what it is to existbetween the world’s certainties.
사목자는 본당 신자들을 상담할 때
간혹 동성애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남에게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개인의 특별한 사생활에
물리적으로 관여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셨다면,
지금 도대체 누가 그 자유인을 간섭할 수 있단 말입니까?
-2010년 '하늘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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