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황석영의 수인 囚人 - 한 4.19 생존자의 자서전

독후감 덕후감

by Paperback Writer 2025. 2. 23. 00:01

본문

반응형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한반도에서 지내온 모든 일이 감옥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4.19세대는 젊은 시절 한 번의 도전으로 고민 없이 사회에 편입한 듯 보였다.
전쟁 후 공백이었던 한국사회에 스스로 주로가 된 그들의 인생에는 극심한 탄압도, 이념적 그늘도 없는 줄 알았다.

서대문에 있는 4.19혁명기념관의 위엄을 보면 더욱 그랬다.
그냥 어린 시절 의분을 냈고, 그걸로 평생을 먹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요즘 20~30대가 386세대나 X세대를 보는 시선도 그럴 것이다.)

내가 겪지 않은 고통은 가볍게 보이거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황석영의 자서전 '수인 囚人 The Prisoner'은 그가 10대 시절 겪은 4.19 시위의 트라우마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간 이야기였다.

그는 경복고 2학년 때 4.19 시위에 나갔다가 바로 옆에서 친구(안종길 열사)가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했다.
황석영은 학교를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았다.
그의 친구들은 방황하다 요절하거나 사회적으로 무너졌다.

4.19 이전 그의 고교 시절은 마치 박완서의 개성 시절처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황석영은 이미 필력을 발휘하며 전국적으로 문재를 떨치고 있었다.
4.19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4.19를 겪은 이들이 평생 정신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기성의 것에 도전하고 반항했다는 것을 그의 삶이 웅변하고 있었다.
그의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 동세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속 무모해 보이던 낭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지만, 동시에 한국 현대사다.

황석영은 어렵사리 반항아의 포즈로 문단에 들어섰지만, 박정희 정권과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대표작인 장길산은 유신 이후인 1974년 한국일보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 전방에 나섰다.

결국 북한까지 갔다.

그 과정에서 가정적 불행도 겪었다.

자유를 추구한 작가에게 죽음 독재 분단으로 점철된 이 땅은 감옥과 같았다.
감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서 제목은 수인, 역사 속에 갇힌 자신의 삶에 붙인 이름으로 걸맞다.

책은 장길산 같기도, 객지 같기도, 오래된 정원 같기도 하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방황,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망명과 수감 생활을 촘촘히 기록했다.
김일성, 김남주, 문익환 같은 거물들뿐 아니라 감옥의 절도범, 사기꾼, 피난민 마을의 술주정꾼까지 등장한다.
마치 열전()을 읽는 것 같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며 전쟁과 분단, 70~80년대 문학과 민주화운동을 간접 체험했다.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난 황석영은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시대를 온 몸으로 정면돌파한 기록이면서, 일종의 민중사 같기도 한 기록이다.

그의 어린 시절 일화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영등포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때 6.25 전쟁이 터졌는데, 가족들이 피난길에 오른 와중에 인천에 배를 타러 가서 한밤중에 배수구에 숨어 있다가 한 무리의 군복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나왔고, 그들이 "이박사를 지지하느냐, 김장군을 지지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황석영의 아버지가 "저희는 정치라고는 전혀 모르는 양민입니다.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들어가라"며 보내주었다고 한다.  

어느 편이냐는 질문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마찬가지이지만, 황석영의 생애를 따라 다닌 질문 같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가가 그를 배척했고, 이명박정부에 협력했을 때는 진보에게서 비난 받았다.
지금도 그가 작품을 낼 때마다 얼마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자를 갖다 대는 눈길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죄목을 달아주는 수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고1 때 도서관에서 장길산을 읽고 황석영을 좋아하게 됐다.
삼포 가는 길, 객지, 무기의 그늘을 읽으며 그의 반항적이고 풍운아 같은 분위기에 빠졌다.

이런 멋진 표지였다.

고2 때, 황석영이 방북했다.
이상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그는 독일, 미국을 떠돌았다.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대학생 때 읽은 손님은 분단의 상처를 깊이 드러낸 작품이었다.
비로소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박완서 아니면 황석영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박완서 선생님은 떠났으니 그가 가장 유력하리라 생각했는데 한강 작가가 똮!!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보다 어린 세대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싶었다.
내가 4.19세대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는 더더욱 앞선 세대의 트라우마와 반항에 무관심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이 어떤 이유로든 상처와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처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이 준 소외감에서 조금은 놓여난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도전하며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스스로 위로할 수 있게 된다.
문학의 쓸모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반도 어느 시대보다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20세기와 21세기.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두고두고 읽히길 바란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