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조, 시~작!"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돌아가셨다는 연합뉴스의 보도를 접하고 여러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국민체조였는데, 운동장에 나가 체조대형으로 줄 서는 것은 귀찮았지만 기분 좋은 음악과 함께 저 목소리가 들리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뭔가 군사정권스럽지 않은 채를 하고 싶어했던지 새천년체조인가 하는 새로운 체조를 가르치기도 했다.
군대식 체조이고 음악도 군가 같다고 비판이 있었나 본데, 뭐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가니 다시 국민체조를 했다.
12가지 동작을 따라하면 목부터 다리까지 온 몸을 한번씩 쭉쭉 펴주는 스트레칭 효과가 있다.
오히려 어릴 때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게 뭐가 좋은지 몰랐지만, 이제 몸이 찌뿌등등한 어른이 되고 보니 체조가 얼마나 요긴한 것인지 체감을 한다.
요즘 사무실에서도 오후 4시쯤 종을 땡땡 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체조를 한 번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아님)
1977년, 대한민국의 아침은 새로운 리듬으로 시작되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구령, "국민체조 시~작!".
학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국민체조를 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유근림 전 경희대 체육학과 교수였다.
뽀빠이 이상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 분은 목소리만 녹음한게 아니라 국민체조 자체를 만들었다.
물론 온 국민의 체조를 만들라고 지시한 사람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
지침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체조를 만들라.
명령을 받은 곳은 대한체육회.
그 전에도 재건국민체조 같은게 있었다고 하니 박정희는 체조에 진심이었나 보다.
근데,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에 국민체조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여름 방학에 아이들이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체조를 하는데, 선생님이 테이프를 틀어주는 체조 음악이 국민체조풍과 비슷하다.
일본에서 1950년대에 라디오 체조라는 걸 만들어서 보급했는데, 이건 자위대 체조를 간단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온 국민을 위한 체조를 보급한 것은 일본이 처음이 아니고,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독일도 군대에서 체조를 만들어 보급한게 일반인에게도 확산됐다고 한다.
북한에도 인민건강체조가 있다.
일제 잔재라기보다는 20세기 전쟁 시대, 국민 총동원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디오체조에 대해선 이런 설명이 있다.
라디오 체조는 1928년에 오사카 민방을 통해 시작되었고, 1951년부터 일본 국영 NHK라디오를 통해 널리 퍼졌다. 그런데 일본의 라디오 체조는 원래 미국 보스턴의 WGI에서 방영하던 체조 방송을 그대로 가져와 현지화한 것이다. 대만에도 국민보건체조(國民健康操)라는게 있었다.
어쨌든 한국형으로 만든 국민체조는정권 차원에서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기업들, 관공서에 퍼지도록 밀어붙였다. 그 뒤에 나온 새천년체조, 청소년체조, 덩더꿍체조 같은 아류(?)들을 제치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유 교수님은 생전에 국민체조가 많은 이들에게 애착을 받은 이유를 이렇게 한 단어로 설명했다.
"쉽잖아요."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국민체조의 경쾌한 음악이 당시 서울 시립국악관혁안단이 직접 연주한 음악이라는 것.
또 경희대 음대 김희조 교수가 직접 작곡했다는 것.
4분의4박자의 군가풍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경쾌하면서 인상적인 리듬, 다양한 악기들의 다채로운 소리도 체조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제자리걸음과 숨쉬기부터 시작되는 국민체조는 다리운동(무릎 굽히기) - 팔운동(팔 돌리기)- 목운동(목 돌리기) - 가슴운동 - 옆구리운동 - 등배운동 - 몸통운동(몸통 돌리기) - 온몸운동 (노젓기) - 뜀뛰기 (여기서 다시 숨쉬기로 돌아가서 한번 더!) - 팔다리운동 - 숨고르기(마무리)로 이어진다.
구체적인 순서와 동작을 고안한 사람은 앞서 설명한 대로 1977년 당시 45세 나이의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유근림 교수. 당시 대한체조협회 부회장이었던 그는 대한체육학회를 통해 내려 온 정부의 요청에 따라 체조를 만들고, 구령 더빙 작업에도 참여해 전국민이 그의 목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됐다.
유근림의 설명에 따르면 구령으로 녹음된 목소리는 사실 자신의 평소 말투가 아니라고 한다.
녹음 당시에 체조 선수들을 불러 20명 정도 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국민체조 동작을 시키고 자신이 직접 구령을 붙였다고 한다.
동작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노 젓는 동작(온몸 운동)은 사실 유근림이 체조 동작을 고안하다가 지루한 동작들만 많은 듯해서 흥미 차원에서 넣었다고 한다.
실제로 노젓기가 재일 재미있다.
황당하달까 재밌는 점은, 국민체조를 만들고 녹음까지 한 유근림 교수는 아무런 대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더구나 그의 자녀들도 국민체조 목소리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유근림 교수는 2025년 3월 11일,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체조가 처음 시작된 것은 1895년 갑오개혁 때라고 한다.
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30일 국민보건체조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1960년의 재건 체조 이후 공무원들의 신세계체조, 농어촌의 새마을체조도 있었다.
다음은 국가기록원의 자료.
체조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1895년에 까지 이른다.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하면서 「학교 설치령」이 시행되었는데 이때 체조가 교육과정에 도입되었다.
이 시기의 체조는 군대식 체조를 그대로 가져와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 뒤 근대 교육제도가 확립되어 ‘체육’이 정식 교과목이 되면서 체조는 체육교과 내의 한 과정으로 교육되었다.
학교에서는 맨손체조를 비롯해 매트, 철봉, 뜀틀 등 기계체조와 조를 편성하여 함께하는 체조 등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에서 맨손 체조를 국민 전체에 보급하여 실시하도록 한 것은 1953년부터였다.
‘국민보건체조’ 라는 이름의 이 체조는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12월 30일 김영일의 지도로 서울 시공관에서 신제(新制) 국민보건체조 발표회를 가짐으로서 시작되었다.
이 체조는 아침 일찍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구령에 맞추어 동작을 하는 것이었는데, 동작은 비록 달라졌지만 그 시행방식이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식민화를 강화하기 위해 했던 ‘황국신민체조’(흔히 ‘라디오체조’라고 함)와 비슷해 일제에 대한 깊은 비판없이 이를 답습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 라디오 체조형식은 이후 오랫동안 체조 보급의 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1961년 5.16 이후, 국민정신을 단합하고 체위를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새로운 동작의 ‘재건체조’가 고안되었다.
이 재건체조는 10개 종목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또한 이전의 국민보건체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아침 일찍 학교나 마을 회관에 모여 라디오 소리에 맞춰 체조를 해야만 했다.
1972년 보급된 ‘신세계체조’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공무원들의 체위향상과 체육진흥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무원들의 주도로 조기회를 결성하여 아침 일찍 나와 마을을 청소하고 신세계체조를 실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 건전한 정신을 심겠다는 의도였다.
공무원들은 조회나 점심시간에 반드시 신세계체조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공무원에 대한 체조 보급에서 더 나아가 1974년 7월 만들어진 ‘새마을체조’는 이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74년 4월 문교부의 요청에 따라 대한체육회의 사회체육위원회 및 대한체조협회가 공동으로 시안을 마련, 강습회와 실험과정을 거쳐 확정된 새마을체조에는 사람들이 따라 하기 쉽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율동이 가미되었다.
동작은 노래 가사에 부합되게 만들어져 일반 체조의 순서를 따르지 않았고, 체조 동작 자체가 부드럽고 동작 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러웠다.
이후 1977년에는 온 국민에게 보급한다는 목적 하에 12개의 동작으로 확정한 ‘국민체조’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국군의 도수체조와 동작과 진행순서가 거의 유사하였다.
국민체조는 이후 22년간 각급 기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오늘날 체조라고 하면 국민체조가 생각날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 뿌리깊게 남은 것도 그만큼 긴 기간 동안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국민체조가 전체주의적 군사문화의 반영이라고 보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조를 만들었다.
‘새천년 건강체조’ 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 체조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군대식 체조와 정형화된 동원형 체조에서 탈피해, 우리 민족 고유의 가락과 움직임을 현대인들의 생활 변화에 맞추어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개발한 체조이다.
이 ‘새천년 건강체조’는 2010년 ‘국민건강체조’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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