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 먹고 쉬고

깻잎, 고수, 그리고 방아잎

Paperback Writer 2025. 3.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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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잎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부산 출신인 나에게 이 향기로운 잎은 어린 시절부터 추어탕에 꼭 넣는 양념이었다.
상쾌한 향기, 달콤한 맛, 까슬한 감촉은 뭉근한 추어탕에 딱 어울렸다.

서울에서 처음 추어탕을 먹었는데 방아잎이 없고 산초가 있어서 당황했다.

서울 친구들을 부산에서 만났을 때, 때마침 추어탕을 먹으러 갈 기회가 있었다.
드디어 방아잎을 소개할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기 이기 방아잎이라는기라. 이거를 넣어 무믄 그 맛이 기똥차거든."

친구들 역시 나의 극찬에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낯선 방아잎을 추어탕에 넣었다.
한 친구는 몇 숟가락 먹더니 손놀림이 느려졌다.
다른 친구는 겨우 겨우 씹어 넘기는가 싶더니는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똑같은 음식을 두고 사람마다 호불호가 이렇게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을.

 

깻잎 Sesami Leap

어릴 적 나는 깻잎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 깻잎 무침은 늘 밥상에 올랐다.
반찬이 없으면 간장에 절어 까맣게 된 깻잎으로 흰밥을 싸서 먹어야 했다.
결국 그 맛에 익숙해졌다.

어른이 된 뒤 깻잎을 한국에서만 먹고 외국인은 못 먹는다는 얘길 들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니 왜? 깻잎 향기가 싫다고? 이해가 안 되네."

그때 알았다.
풀잎 향기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그건 유전자 때문이기도 하다고.
즉 아무리 맛을 알려고 노력해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고수 Silantro

고수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쌀국수에 약간의 이국적인 향을 더하는 재료 정도였다.
낯설고 강한 향이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깻잎을 외국인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수를 꺼리는 것도 그냥 문화적 차이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그런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부러 고수를 많이 넣어 먹기 시작했다.
먹다 보니 익숙해졌다.
어느새 고수 없는 쌀국수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엔 이렇게 말한다.

"고수가 있어야 진짜 쌀국수지. 고수 없는 동남아 음식은 마늘 없는 한국 음식 같아!"

 

이제 고수는 한국에서도 뷔페에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방아잎은 여전히 경상도 밖에선 낯설다.

언젠가 부산에서 방아를 꺾어 와서 서울의 집 앞 화단에 심었다.
방아는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며칠 후 누군가가 그것을 뽑아버렸다.
아마도 방아잎의 강한 향이 싫었던 모양이다.
살짝 당황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게는 그 향이 달콤하고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누군가에겐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방아는 Korean Mint라고 표현한단다.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아향이 빨래 비누냄새나 행주 빤 냄새 같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방아잎, 깻잎, 고수잎 경험을 얘기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방아잎 먹는 경상도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방아잎을 좋아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 노력해도 그 맛을 모르고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

그냥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살다 보면 낯선 일 당황스러운 일 때로는 이해가 안 가고 화가 나는 일을 볼 때가 있다.
젊을 때는 그럴 때마다 그게 다 뜯어고쳐야 할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여러 일을 겪다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옛날 학교들은 산꼭대기에 있어어도 운동장이 넓었고, 요즘 학교들은 운동장이 좁아도 아파트 한 가운데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가 최고의 커피 음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물과 얼음까지 부어 마신다.
영국은 마차를 타다가 자동차로 옮겨와 채찍을 휘두르는 오른손이 밖으로 가도록 운전석을 배치했지만, 좀 더 늦게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선 오른손으로 기어를 움직이기 쉽게 왼쪽으로 운전석을 옮겼다.

그게 그렇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과 상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나에게 낯설고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꼭 필요한 일일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한 단어로 줄이자면 타인에게 또 낯선 일들에 너그러워지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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